(스포일러 주의)
1. 시작하며
2024년 11월 20일에 개봉한 김대우 감독의 4번째 장편 영화. 2011년에 개봉한 콜롬비아 영화 히든 페이스를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 작품이 4번째 리메이크이며 우리나라 이전에 인도(2013년), 튀르키예(2017년), 멕시코(2019년) 가 있었다는 점이다. 주연은 송승헌, 조여정, 박지현이다. 김대우 감독의 이전 작품은 음란서생 (2006년), 방자전(2010년), 인간중독(2014년) 이 있다.
예산은 약 70억이 들어갔으며, 손익분기점은 140만명이라고 밝혀졌는데, 19세 관람가라는 점에서 쉬운 목표는 아니다. 참고로 김대우 감독의 전작인 방자전은 298만명, 인간중독은 141만명이었다. 특히 개봉 3주차 이후 시점부터는 크리스마스 영화 개봉이 시작되는데다 '위키드', '모아나 2' 등의 흥행이 이어지고 있어 상영관이 확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100만명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으나, 관객들의 꾸준한 호평과 입소문 덕분에 12월 23일, 100만 명을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OTT나 VOD 등, 2차 판매 수익까지 고려하면 손익분기점은 넘길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한 마디로 (무리하게) 정의하자면 스릴러를 표방한 에로티시즘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 스토리 해부
편집을 고려하지 않고 스토리를 나눈다면 무리 없이 '기승전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 기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성진(송승헌)과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 수연(조여정)은 연인 사이이다. 결혼을 앞두고 이미 오케스트라의 단장인 수연의 어머니(박지영)로부터 신혼집도 선물 받고 약혼식까지 했으며 호화 리조트로 신혼여행 준비마저 되어 있으나 이들은 사랑이 식었음을 느끼게 된다. 수연은 성진에게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며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영상을 남기고 어디론가 잠적해 버리고 만다. 시간이 지나도 수연이 오지 않자 첼리스트를 공석으로 둘 수 없어 새로운 첼리스트를 영입하는데 그게 바로 미주(박지현)이다. 미주는 자신이 수연의 아는 동생이라고 소개하는데 성진과 미주는 마치 불과 기름이 만나 불이 붙듯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운 관계로 변모하게 된다.
2) 승
사라진 수연은 여행을 간 것이 아니라 사실 신혼집의 비밀벙커에 갇히게 된 것이었다. 이 신혼집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많이 있는데 수연과 미주가 어릴적 개인 레슨을 받은 첼로 선생님의 집이고 그 선생님의 선친이 직접 지은 집인데 그 선친은 전직 731부대 의무관이었고 집을 지을 당시 벙커로 쓰기 위해 특별한 장치를 만들었다. 책꽂이를 비밀 통로로 옆으로 밀고 들어가면 안에는 거실/화장실 거울을 통해 바깥을 볼 수 있지만 바깥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수연과 미주는 어릴적 몰래 그 곳에 들어가 동성애를 나눴는데 수연이 주인, 미주는 하인 같은 관계였다.
사실 수연의 잠적 작전은 수연과 미주가 짜고 벌인 자작극이었다. 그러나 미주는 자기를 버리고 결혼을 하는 수연에 앙심을 품고 일부러 수연에게 가짜 열쇠를 주어 수연이 스스로 갇히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수연의 집과 예비 남편까지 빼앗기 위해 의도적으로 성진에게 접근하여 유혹을 당하는 척 한 것이다.
성진과 미주가 집안에서 벌이는 애정 행각을 다 보고는 있지만 갇혀서 나갈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따질 수도 없는 수연은 추위, 배고픔, 배신감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이 점이 관전 포인트인데 성진은 아무것도 모르고 미주와의 불륜을 즐기고 있고, 미주는 수연이 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성진과의 적극적인 정사로 수연을 자극시키고 있고, 수연은 모든것을 보고 들으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속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3) 전
성진은 화장실 세면대의 물이 지 멋대로 멈췄다 나왔다 하는 것을 보고 집 안에 누군가 있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수연임을 깨닫게 된다. 수연을 꺼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순간 무엇인가가 뇌리를 스치며 태세전환을 하게 된다.
사실 분식집을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성진은 어릴때부터 가난하게 살아 왔고 실력은 있지만 돈도 빽도 없어 미래가 불투명했지만, 갑부 어머니를 둔 수연과 사귀게 되면서 명예와 재력까지 얻게 된다. 하지만 수연 모녀의 은근한 무시와, 있는 집 사람들과의 물과 기름같은 위화감으로 수연의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게 된다.
그 와중에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미주를 알게 되고 그래서 더욱 미주에게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자신과 미주의 관계를 다 알고 있는 수연을 벙커에서 꺼내주면 자신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다시 무명의 시절로 돌아간다는 두려움에 갈등을 하게 된다.
4) 결
수연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성진은 미주와 상의를 하게 되는데 이때 미주의 핸드폰 비밀번호가 수연의 생일로 되어 있는 것과 핸드폰 배경화면이 미주와 수연의 키스 장면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둘의 관계를 추궁하게 되고 결국 둘의 관계를 알아버린다.
성진과 미주의 관계를 의심한 수연의 어머니가 수연의 번호로 핸드폰을 개통하여 성진과 미주에게 의심스러운 문자를 보내게 되고 탄로 날 것을 우려한 성진은 미주를 닥달하여 수연을 꺼내주게 된다. 죽은 것 같았던 수연은 벙커 속의 비상식량(곰팡이 슨 라면)으로 연명하며 다행히 탈진한 상태로 살아 있었고 나오면서 역으로 미주를 가둬버리게 된다.
성진은 수연이 나오게 되면 자신을 버릴 줄 알았지만, 수연은 성진을 용서한다. 어차피 쇼윈도우 예비(?) 부부 사이였던 관계이기에, 성진은 수연을 이용하여 명예와 부를 얻고, 수연은 성진을 이용하여 남들 보기에 그럴 듯한 가정처럼 보이게 하는 것에 대해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수연은 미주를 벙커에 가두어 놓고 자신의 성적 노리개로 이용하고 미주는 그런 수연을 주인처럼 섬기면서 또한 둘의 이해관계도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하나?)
3. 내 맘대로 해부
이 영화의 배우, 장점, 단점 등을 내 맘대로 해부해 보겠다.
1) 송승헌이라는 배우
4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얼굴과 몸을 유지하고 가꾸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놀랍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그런 중견의 송승헌이라는 배우가 이런 에로 영화에서 신혼부부 역할로, 몸으로 열연하는 부분에 대해서 (물론 송승헌의 대체재로 딱히 떠오르는 사람도 없지만) 뭔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느낌?)그리고 극중에서 지휘자로 나오는데 지휘 레슨을 안받았는지 영 어색한 느낌이다.
2) 조여정이라는 배우
이번 영화에서 조여정은 앞머리만 숏으로 친 뱅헤어 스타일로 나오는데 '강남 언니' 라는 성형을 비꼬는 어느 유명한 짤과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놀랐다.
또 마지막에 조여정이 벙커에서 탈출하는 장면에서 초췌한 몰골로 미친듯이 연기하는 광기 어린 장면은 흡사 영화 '엑소시스트' 를 떠올리게 했다.
그냥 영화속에서의 내 느낌을 내 맘대로 적은 글인데 혹시 조여정씨가 이 글을 본다면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사실 조여정씨 팬에 가깝다면 모를까 안티는 아니다. 조여정 배우는 연기도 잘하고 이 영화에서는 나름 광기어린 모습을 잘 표현해서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다. 그리고 임지연이나 박지현 같은 섹시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귀여운 마스크에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다.
3) 박지현이라는 배우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배우이자 팜므파탈이었다. 사실 다른 작품을 거의 본적이 없어서 생소한 마스크라고 느껴졌는데 한때 일본의 국민 여동생이자 국민 여배우였던 '히로스에 료코' 를 닮았다는 점에서 굉장한 친근감이 느껴졌다.
복숭아처럼 홍조를 띤 볼, 매끈한 피부, 톡 터질 것 같은 신선한 과일같은 모습은 이전에 포스팅 했던 영화 '서브스턴스' 의 '마가렛 퀄리' 와 같은 매력이 있다. 새로 개봉하는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 에서의 모습도 기대를 하게 만든다.
4) 벙커에서의 설정
2011년에 콜롬비아에서 만들어진 원작 영화를 못봐서 모르겠지만, 지금 시대의 핸드폰은 거의 인간과 한 몸같은 존재이다. 극중에 수연이 벙커에 갇혔을 때, 아무리 해도 핸드폰이 안터진다는 설정이 있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집이 4G나 5G 이동통신 전파에 대해 완벽한 차단 기능을 갖추고 있다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5) 내용적인 아쉬움
사실상 에로 영화이고 주된 애정을 표현하는 부분이 성진과 미주의 정사씬이다. 그런데 내용상 미주가 수연에 대한 배신감으로 성진을 이용하려고 유혹하여 이루어진 정사라는 것이다. 3명 모두가 한 차례의 에피소드 끝에 기존의 현실에 안주한다는 결론이지만, 차라리 성진이 수연이 주는 모든 혜택을 버리고 미주를 선택하고, 미주도 동성애보다 이성애를 택하여 성진과 미주가 수연을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미주가 고작 수연의 노예에 만족해서 수연의 집에 감금되어 산다는 설정이 왠지 마음이 아프다.
계급론 적인 관점에서 수연을 부르조아로, 성진과 미주를 프롤레타리아로 본다면, 프롤레타리아가 아무리 이상향을 꿈꿔도 현실은 부르조아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해석이 되어 왠지 마음이 씁쓸해진다. 프롤레타리아가 브르조아를 벗어나 나름의 행복과 이상을 찾아갈 수 있다면 좀 더 밝은 미래와 민주적인 관점에 맞는 결말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다.
4. 끝맺으며
'히든 페이스' 라는 영화에 대해 해부해 보았다. 영어로 '감춰진 얼굴' 이라는 뜻의 제목인데, 수연과 미주의 동성애, 구속성애가 감춰진 얼굴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그리고 제목에 '히든 스페이스' 즉 '감춰진 공간' 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데 비밀 벙커에서의 관음증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름 파격적인 내용이었고, 박지현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알게되어 소중하게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송승헌과 조여정이 부부로 나오는데에 대해서는 영화 '인간중독'에 대한 기시감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같은 감독일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같은 감독이었다) 그러고보면 인간중독에서의 임지연과 히든페이스에서의 박지현이 묘하게 오버랩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지 뿐 아니라 정사씬 자체도 기시감이 든다.
인간중독은 영화적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서 좀 아쉬웠는데 히든페이스는 원작 자체가 탄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딴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위에 기술한 바와 같이 몇 가지 옥의 티와 좀 더 파격적인 연출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 정도만 해도 나름 수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얼빈' 영웅 안중근의 서사 (2) | 2025.01.05 |
---|---|
퍼스트 레이디 (4) | 2024.12.22 |
보통의 가족 (4) | 2024.12.12 |
서브스턴스 (10) | 2024.11.17 |
조커 vs 조커:폴리 아 되 (12) | 2024.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