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독자의 주의를 요함)
2023년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6번째 장편영화. 제 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며 각본상을 수상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동안 그가 작업했던 비슷한 결과물들에 염증을 느껴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 이 영화의 각본을 접하고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 이 각본이라면 영화를 다시 시작해 볼 만 하다"
이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24년 2월 10일 기점으로 51만명 이상이 관람하였으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예술영화로써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등장인물
주요 등장인물은 미나토, 요리, 엄마(미나토의), 호시 선생, 교장선생 다섯 명이다.
1. 무기노 미나토 :
무기노 사오리 (편모) 의 아들이며 초등학교 5학년. 반 남자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요리를 좋아하지만 자신도 왕따를 당할까봐 내색을 하지 못한다.
2. 호시카와 요리 :
미나토의 같은 반 학생. 외모나 행동이 여성스러워 남자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편부 슬하에 살고 있으며, 아버지로부터도 학대를 당하고 있다.
3. 무기노 사오리 :
미나토의 엄마. 남편이 내연녀와 여행 도중 사망하여 홀로 미나토를 키우고 있다.
4. 호리 미치토시 :
미나토와 요리가 속한 반에 새로 부임한 담임(국어) 선생. 편모 슬하에 자랐으며 술집 호스티스와 사귀고 있다. 편집증적으로 책의 교정을 보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이다.
5. 후시미 마키코 :
미나토와 요리가 속한 학교의 교장선생. 최근 차사고(남편이 운전 실수로 손녀를 친 사고)로 손녀를 잃고 상실감에 휴직을 했다가 근래 복귀한다. 사고를 낸 운전자가 남편이 아니라 본인이라는 소문도 있다.
영화의 구성
마을의 대형 쇼핑몰에서 불이 난 시점부터 미나토와 요리 두 아이가 태풍에 행방불명이 된 시점까지를
- 미나토 엄마의 관점
- 호시 선생의 관점
- 교장선생과 두 아이의 관점
의 세 가지 관점에서 되풀이 해보는 복기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줄거리
요리는 여성스러운 외모와 행동으로 남자아이들에게 괴롭힘과 왕따를 당한다. 미나토는 요리에게 끌리는 감정이 있지만 요리와 함께 있을때를 제외하곤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도 괴롭힘을 당할까봐 아이들의 괴롭힘 행위에 동조한다. 동조해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사랑하는 사이' 라거나 '키스해' 라며 미나토를 괴롭힌다. 미나토는 자신도 요리를 괴롭히는 척 하다가 나중에는 물건을 마구 집어 던지는 등 이상 행동을 한다. 그 모습을 본 호리 선생은 오히려 미나토가 요리를 이지메 하는 줄 알고 둘을 화해 시키거나 미나토의 과잉 행동을 말리다 미나토와 세게 부딛혀 미나토에게 코피를 흘리게 한다.
한편 미나토가 평상시와 다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미나토의 엄마는 미나토를 추궁하고, 미나토는 호리 선생이 괴롭히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미나토의 엄마는 학교에 찾아가 사실을 알고 싶어 하고,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학교측은 그냥 호리 선생더러 사과를 하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호리 선생의 무성의한 모습, 교장선생의 미온적인 태도,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학교에 실망을 느낀 미나토의 엄마는 끝내 변호사를 선임하고, 학교측은 문제가 될 것을 두려워 하여 학생들에게 애매모호한 설문조사를 하고 그 근거로 호리 선생을 폭력교사로 낙인 찍어 해임시킨다.
요리의 아빠는 여성스러운 행동을 하는 요리의 머리에 '돼지의 뇌' 가 들었다며 공공연히 요리를 '괴물'이라 칭하고 학대한다. 미나토와 요리는 산속에 버려진 열차 1량을 비밀 아지트로 하고 같이 놀면서 우정을 쌓아 간다. 그러나 요리의 스킨쉽에 혼동을 느끼고 열차에서 도망가지만 요리가 보고 싶어 다시 요리를 찾는다. 요리의 아버지는 요리를 강제로 할머니집 근처로 전학시키고 미나토에게 다른 여자친구가 생겼으니 이제 오지 말라고 거짓말을 하게 한다.
미나토의 엄마는 그저 미나토가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를 기원하지만 미나토는 그렇게 될 자신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뇌 속에 돼지의 뇌가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 하게 된다. 태풍이 오는 날, 몰래 요리의 집을 다시 찾은 미나토는 욕조에 쓰러져 있는 요리를 발견하고 함께 산속 아지트인 버려진 열차로 도망을 갔으나 태풍주의보가 발령되고 산사태가 일어난다.
호리 선생은 우연히 학생들의 작문 숙제를 읽던 중 요리가 암호처럼 자신의 이름과 미나토의 이름을 나란히 쓴 것을 보고 자신이 오해했음을 깨닫는다(미나토가 요리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둘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는 것을...). 사과하러 미나토의 집을 갔으나 미나토가 사라졌다고 하여 미나토의 엄마와 함께 미나토를 찾으러 태풍을 뚫고 산속 버려진 열차에 다다른다.
장면이 바뀌고 미나토와 요리가 열차를 빠져나오자 하늘은 맑게 개어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면서 미나토와 요리가 천진난만하게 숲속을 뛰어 노는 모습을 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감상
킬링타임용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면 무거운 주제로 영화가 끝난 이 후에도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일단 영화의 구성 자체가 세 가지 관점에서 복기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하나의 팩트를 두고도 보는 사람의 관점과 생각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어지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구성이 아닌가 싶다.
대조를 보이기 위한 설정이겠지만, 미나토의 아버지나 요리의 아버지 모두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남성성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미나토의 아버지는 학창시절 럭비선수였으며 가족 몰래 내연녀와 여행 도중 교통사고로 죽었고 요리의 아버지는 큰 부동산 회사를 다니며 돈을 잘 번다고 자랑하고, 술과 여자를 좋아하여 캬바쿠라(우리나라로 치면 룸살롱)의 단골 손님이다.
"인간의 머리에 돼지의 뇌를 이식하면 그것은 인간일까? 돼지일까?"
이 영화에서 끊임 없이 되풀이 되는 이 질문에서, 돼지란 편견을 가진 사람이 상대를 '괴물'로 지칭하는 말이 될 수도 있고, 편견을 가진 사람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 결국 이 영화는 편견에 대한 내용이다. '편모'에 대한 편견(편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괴물같은 엄마라는 편견), '술집(정확히는 여성이 나오는 술집)에 다니는 남자'에 대한 편견(여기서는 호리선생으로 대변되겠지만 캬바쿠라에 다니는 남자는 지조가 없고 여자관계가 복잡하며 성실하지 못할거라는 편견), 그리고 성에 대한 편견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며 동성을 좋아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편견). 단편적인 사건이나 사람의 모습을 보고 마치 그게 전부인양 치부해 버리고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마음대로 '괴물'이라고 지칭하는 우리 사회의 무수히 많은 편견을 고발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영화 초중반의 교장선생은 무기력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속물처럼 그려지지만 그녀는 사실 음악 선생으로 선생 일을 시작했고 학생들 입장에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미나토는 교장선생에게 자신이 거짓말을 했음을 고백하고 사실을 말하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걸 들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교장선생은 말할 수 없는 그 이야기를 악기에 대고 '후~' 불어버리라고 말해주며 이렇게 대답한다.
"몇몇 사람들만 가질 수 있다면 그건 행복이 아냐, 그건 그냥 말도 안되는거야, 누구나 가질 수 있는걸 행복이라고 하는거야."
결국 이 대사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 주제인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일종의 '열린 결말' 을 노린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분명 미나토의 엄마와 호리 선생이 버려진 열차에 도착했을 때 안에는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는 두 친구가 열차를 빠져나와 아침 햇살에 뛰어다니는 모습이 나온다.
필자도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아이들이 살아서 열차를 빠져 나온거라 생각했었는데, 내용을 곱 씹어 보니 두 시점의 시각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즉, 아이들이 살아 있었다면 미나토 엄마와 호리선생에게 발각 되었을 것이고 구조되어 밤에 각각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장면은 죽은 아이들의 영혼이 시공간과 상관 없이 아름다운 햇살 아래서 마음껏 뛰어 논다는 해석이 좀 더 맞을 것 같다. 열차를 빠져나오는 두 아이의 대사를 봐도 그런 측면이 있다.
요리 : 다시 태어난걸까?
미나토 : 그런 일은 없다고 생각해.
요리 : 아닌가?
미나토 : 아냐, 원래 그대로야.
요리 : 그래? 잘됐네.
결국 현실 세계에서 누릴 수 없었던 행복을 죽어서 함께 누린다는 슬픈 내용인 것 같다. 물론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으니 그건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각본 자체가 마치 동성애를 옹호하는 듯한 스탠스에 있다는 것, 쉽게 이해되거나 와닿지 않는 내용 구성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강렬하고 명확하다. 이 사회의 편견이 얼마나 부당하고 많은 이들의 행복을 빼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갈등하며 변치 않으려는 두 아이의 우정과 사랑을 넘나드는 관계가 무척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짙은 여운과 진한 감동, 묵직한 사회 고발적 메세지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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