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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피와 뼈

by 천년백랑 201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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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두 번씩이나 보게 된 영화. 처음 볼땐 몰랐는데, 일단 화려한 캐스팅에 놀랐다. 기타노 다케시와 오다기리 죠는 기본이고, 우울한 청춘에서 냉혹한 도전자를 보여준 아라이 히로후미(재일교포 3세라는 것을 자료 검색하다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약방의 감초 같은 쿠니무라 준, 테라지마 스스무 등의 주/조연급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여 보는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어설픈 한국어 발음이 거슬리긴 해도, 이 영화는 재일동포 1세대 2세대인 한국인의 처절한 삶의 모습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리얼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학교에서, 공장에서, 시장에서, 가정에서 조선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그들이 나아가야 했던 아니 나아갈 수 밖에 없던 그 길은 자갈투성이의 가시밭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가부장적인 한국인 아버지상을 연기한 기타노 다케시를 통하여 적응하지 못할바에야 자기 나름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여 (폭력, 왕성한 번식력, 돈에의 집착) 다른 인물들과 어우려져 나가는 모습은 부아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끓어 오르게 하였다. 왜냐하면, 전쟁과 이념의 소용돌이 속의 타국에서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자기 방어의(자기 돈을 지키고 자신의 종족을 퍼트리기 위한) 수단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 없는 집을 부수어 자신의 어묵 공장을 짓고 동포들을 착취하여 돈을 벌어들이며, 주인 없는 여자를 멋대로(혹은 돈으로) 점령하여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번식을 위해 노력한다. 아마도 극 중에 나오는 '나쁜피'가 어쩌면 이 영화에 더 어울리는 제목일지도 모르겠다.'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표현도 있지만, '피와 뼈'라는 제목은 같은 핏줄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긋지긋하고 증오스럽게 될 수 있는지를 뼈져리게 보여주는 제목이기도 하다. 다른 인물들은 솔직히 어떤 배우가 해도 관계 없었겠지만, 김준평역만큼은 기타노 다케시가 적임자라고 생각된다. (그가 한국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할지라도..) 그의 거칠고 제 멋대로인 것 같은 이미지는 김준평의 밑바닥 삶의 모습을 충분히 그려주고 있다. 만약 일본의 국민배우 야큐쇼 코지(쉘 위 댄스의) 같은 배우가 그리는 김준평같은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다. 

 

최양일 감독 역시 재일교포지만, 전후 당시 재일교포의 가감없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하드보일드 스타일과 시대극을 적절하게 버무린, 시장한 야밤의 별미와도 같은 수작이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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