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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영화 '이니시에이션 러브' 해부하기

by 천년백랑 2025.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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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 대주의) 

 

시작하며

작가 이누이 구르미가 2004년 4월 1일 발매한 동명의 연애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연애소설을 가장한 미스테리 소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있다). 2015년 5월 23일에 영화로 개봉되었으며, 감독은 츠츠미 유키히코, 주연은 마츠다 쇼타, 마에다 아츠코가 맡았다. 한국에는 2016년 3월 17일에 개봉되었다. 한국 관객수가 4113명으로 집계된 것으로 보아 분명 국내에서 히트된 영화는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영화 포스터

 

영화 포스터를 봐도 이 영화는 대놓고 반전을 홍보하며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앞에 100분 동안 보았던 내용이 마지막 5분에 의해 내용이 다 뒤바뀌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다음영화에 리뷰를 남겼던 날짜로 추산해 보건데, 2018년 이었다. 그때는 그냥 충격적이었구나 하고 지나갔었는데 지금(2025년 1월) 다시 보니 여전히 충격적이고 내가 알지 못했던 복선이 여기 저기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서 보이게 된 것도 꽤 있었다. 

 

마츠다 쇼타와 마에다 아츠코

 

먼저 남주인공인 마츠다 쇼타는 내 이전 포스팅 '폭력교실과 마츠다 유사쿠' 라는 포스팅에서 소개한 바가 있는데 8~90년대 일본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재일교포 출신의 배우 마츠다 유사쿠의 차남이다. 여주인공 마에다 아츠코는 일본 극장형 여성 아이돌 AKB48의 전성기 시절 센터를 담당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고 2012년 AKB48 졸업 이후에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AKB48 시절부터의 내 느낌이지만 마에다 아츠코는 아이돌이나 배우라기 보다는 그냥 옆집 여동생 느낌이다. 뭐 AKB48 자체가 그런 컨셉이긴 하지만... 말하자면 Girls Next Door?) 그래도 미소는 예쁘다고 생각이 된다. 

 

 

영화는 1987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당시 유행하던 음악, 문화, 아이템들을 소개하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영화를 봄으로써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던 것 같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2012년 시작된 것으로 보아 이 영화가 응답하라 시리즈로부터 영감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반전이란 

잘못하면 장황하게 쓰여질까봐 걱정이 된다. 먼저 이 영화를 그냥 전체적인 구성으로 나눈다면 아래와 같다. 

 

Side-A, Side-B는 마치 당시에 음악을 듣는 유일한 요소였던 카세트 테이프가 앞, 뒤로 돌려 꽂음에 따라 A면, B면으로 나뉘었던 것에 착안해서 만든 것 같다. 여기서부터가 복선을 깔고 있는데, Side-A와 Side-B는 경우에 따라 이어질 수도 있고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고 전혀 별개일 수도 있다는 것.

 

Side-A에는 뚱뚱한 스즈키가 나오고 Side-B에는 날씬한 스즈키가 나온다. 그 이유는 Side-A의 스즈키가 마지막에 여자친구인 마유코에 부끄럽지 않은 멋진 남자친구가 되기 위해 살을 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 

 

반전을 빼고 본다면 Side-B는 그냥 Side-A의 연장으로 이어지는 내용일 것이다. 여기서 내용을 보자면... 

 

Side-A

1987년 7월 10일, 시즈오카에 사는 뚱뚱하고 매력 없는 남자 대학생 스즈키가 한 통의 행운의 전화를 받으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그 전화는 모치즈키라는 친구가 미팅에 참여할 남자가 부족하여 머릿수를 채워달라는 내용의 전화였다. 스즈키는 그 미팅에 나갔다가 여자측 참석자인 마유코에게 첫눈에 반한다. 이 후 미팅에 참석했던 멤버들은 함께 해변에 놀러가기도 하고 테니스 모임도 하고 친하게 지내게 된다. 그 와중에 마유코도 스즈키에게 호감을 보이며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따로 만나게 된다. 스즈키는 마유코의 조언에 따라 헤어스타일, 패션스타일도 바꾸고 운전면허도 따며 서로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급기야 스즈키는 마유코에 고백을 하고 보고싶다고 마유코의 자취방에 찾아가 동침을 한다. 스즈키는 중고차도 사고 매주 하루를 잡아 마유코와 데이트를 즐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마유코는 시내의 큰 호텔에서 함께 하고 싶다고 하자 스즈키는 혹시 남은 방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호텔에 연락하니 마침 취소된 방이 하나 있어서 바로 예약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이브 날 스즈키와 마유코는 호텔 앞에서 만난다. 그 때 지나가던 커플이 둘을 보고 참 안 어울린다고 놀리자 스즈키는 살을 빼기로 결심하고 마유코는 응원한다. 

 

스즈키의 눈에 보인 샤방샤방 한 마유코

 

Side-B

갑자기 뚱뚱한 스즈키는 온데간데 없고 날씬한 스즈키가 등장한다. 스즈키는 마유코와 함께하기 위해 내정된 동경의 대기업을 마다하고 시즈오카에 있는 중견 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회사에서 신입사원 중 뛰어난 2명을 동경에 파견보내기로 하여 어쩔 수 없이 마유코를 두고 동경으로 가게 된다. 스즈키는 힘들게 주 1회 시즈오카에 내려오며 마유코와의 연애를 이어나간다. 그 와중에 스즈키는 동경에서 함께 근무하는 같은 처지의 신입사원 미야코와 함께 일하며 호감을 갖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즈오카에 있는 마유코는 귀찮아지고 동경의 미야코에 감정이 끌리게 된다. 마유코가 지방에 있는 귀여운 응석받이 이미지라면 미야코는 세련되고 성숙한 도시적 이미지이다. 미야코도 스즈키에게 적극적으로 플러팅을 하고 요즘 말로 '썸'을 타게 된다. 스즈키가 시즈오카에 여자친구가 있음을 알게 되지만 아랑곳 없이 직진하고 스즈키는 흔들린다. 

미야코의 업무를 도와주며 급속히 친해지는 두 사람

 

어느날 마유코는 생리가 안나온다고 스즈키에게 알리자 스즈키는 당황한다. 함께 산부인과를 갔는데 임신이 맞았다. 스즈키는 마유코와 결혼을 할까 생각하지만 결국 애를 지우기로 한다. 점점 마유코에 대한 마음이 식으면서 주1회 내려가던 것이 주2회로 멀어지고 동경에서는 미야코와 연애를 하며 2중 생활을 하게 된다. 그 와중에 시즈오카에 내려간 스즈키는 실수로 '마유코'를 '미야코'로 부르고 마유코는 스즈키에게 여자가 있음을 직감한다. 스즈키는 역으로 마유코에게 화를 낸다. 자기는 힘들게 시간을 내서 마유코를 만나러 시즈오카에 오지만 마유코는 한 번도 스즈키를 보러 오지 않았고,  돈을 아끼려고 고속도로 조차 타지 않는데 마유코는 비싼 책도 사고 돈을 펑펑 쓰는것에 화가 난 것이다. 물건을 집어 던지며 마유코와 싸우고, 그녀의 집을 나와 둘의 관계는 끝나게 된다. 

 

스즈키는 동경의 미야코와 정식으로 사귀게 되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야코의 본가에 인사를 드리러 가기로 한다. 회사 동료들과 회식을 하고 술에 취해서 숙소에 돌아온 스즈키는 미야코에게 잘 들어갔냐고 전화를 한다는 것이 실수로 마유코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수화기 너머로 마유코의 목소리가 들리자 스즈키는 당황한다. 급기야 마유코가 자신의 애칭인 '탓군?' 이라고 부르자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린다. 

 

미야코의 본가를 방문한 스즈키. 가정부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부자집임을 알 수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미야코의 본가에 간 스즈키는 마유코의 목소리가 계속 마음속에 걸린다. 헤어진지 반년 가까이 지났지만 '탓군?' 이라고 부르는 마유코의 목소리가 너무 다정했기에 혹시라도 아직도 자신을 잊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마음이 요동친다. 급기야 미야코의 본가를 나와 그 길로 마유코를 만나러 시즈오카로 향하게 된다. 돈을 아끼기 위해 항상 이용하던 국도도 마다하고 거금을 들여 고속도로를 타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나기로 했던 호텔로 부랴부랴 향하는데 이윽고 도착한 호텔앞에서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지게 되고, 일어나서 보니 그것은 Side-A에 나왔던 뚱뚱한 스즈키였다. (이 장면이 바로 경악을 금치못하게 하는 드라마틱한 대반전이었다) 

마유코를 사이에 두고 벙쪄 있는 두 스즈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반전

위의 Side-B의 마지막 장면과 같이 Side-A의 스즈키와 Side-B의 스즈키는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내용순이 아니라 시간순으로 재구성을 해 본다면 아래와 같은 순으로 되어 있다. 

 

즉 마유코가 Side-B의 스즈키와 처음 만났던 것은 1986년 4월 25일이었고(Side-A의 스즈키와 처음 만난것은 87년 7월이니 무려 1년 전에 Side-B가 시작된 것이다), 연애를 하던 도중 Side-A의 스즈키와 양다리를 걸친 것이다. 반전을 보지 않은 상태라면 마유코와 미야코 두 여자와 양다리를 걸친 스즈키가 욕을 먹을 나쁜 놈이었지만, 반전을 보면 결국 마유코도 스즈키와 사귀고 있는 동안에 미팅을 나갔고, 또 다른 스즈키와 만나며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것으로 결국은 똑같은 '치팅' 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나쁜지도 모르겠다. 스즈키는 두 여자를 만나면서 속으로는 갈등하고 가책을 느꼈지만 마유코는 두 남자를 만나면서 걸리지 않을 방법론에만 더 치중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반전을 눈치 채기 힘들었던 이유는 일본의 이름 문화에서도 기인할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성씨를 부르게 되어 있으며 사적으로 친분관계가 있을 때에만 이름을 부른다. 주인공 스즈키는 성이며 여자친구 마유코는 남자친구를 탓군이라고 부르는데 Side-A의 '스즈키 유우키' 라는 이름에서 유우가 한자로 저녁 석(夕)을 쓰는데 이 글자가 일본 가타카나 글자중 '타'로 보이기 때문에 '탓군' 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Side-B의 주인공은 '스즈키 타츠야' 이기 때문에 이름을 줄여서 '탓군'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Side-B에서는 의도적으로 타츠야 라는 이름을 나오지 않게 하고 스즈키라고 불리기 때문에 관객에게 전혀 눈치 못채게 한 것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알겠지만, 마유코가 Side-A의 남자친구를 무리하게 Side-B의 남자친구의 애칭인 '탓군' 이라고 붙인 것에 대해서, 양다리를 걸치며 혹시 이름을 잘못 불러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복선 

  1. 루비반지 : Side-A에서 마유코가 끼고 나온 루비반지는 실은 Side-B의 스즈키가 선물해 준 루비반지였다. 헤어질 때 스즈키에게 돌려줬고, Side-A에서는 잃어버렸다고 거짓말 한 것이다. 
  2. 변비 : Side-A에서 마유코가 몸이 아파 데이트를 펑크 내고 나중에 변비였다고 둘러 대는데 사실은 임신 중절 수술을 해서 몸이 안좋았던 것 
  3. 책 : Side-B에서 스즈키가 왜 비싼 책을 사냐며 집어 던졌던 책들은 사실 Side-A의 스즈키가 빌려준 책 
  4. 에어조단 : Side-A에서 마유코가 스즈키에게 선물했던 에어조단은 Side-B의 스즈키에게 선물했다가 돌려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즉 마유코가 돈을 아끼기 위해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5. 호텔: Side-A에서 누군가 예약을 취소하여 방이 하나 남았던 것은 바로 Side-B의 스즈키가 예약했다가 마유코와 헤어져서 취소했던 것

 

배경음악 

영화 내에 삽입되었던 배경음악은 아래와 같다.

 

Side-A

  • 揺れるまなざし (小椋佳)
  • 君は1000% (1986オメガトライブ)
  • Yes-No (オフコース)
  • Lucky Chanceをもう一度 (C-C-B)
  • 愛のメモリー (松崎しげる)
  • 君だけに (少年隊)

Side-B

  • 木綿のハンカチーフ (太田裕美)
  • DANCE (浜田省吾)
  • 夏をあきらめて (研ナオコ)
  • 心の色 (中村雅俊)
  • ルビーの指環 (寺尾聰)
  • SHOW ME (森川由加里)

 

맺음말 

내용중에 미야코가 설명하는 이니시에이션(Initiation)은 통과의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성인식, 입사식, 입교식 등을 들 수 있겠다. 우리나라 문화로 보자면 '신고식' 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복잡한 단어보다 요즘 유행하는 '환승연애' 라는 단어가 어쩌면 제목으로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사랑을 하기 위한 통과 절차의 사랑, 즉 첫사랑이 아닐까? 우리 말에도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랑이라는 사회적, 생물학적, 관계학적 정의를 배워 나가는 절차가 되는 (그 절차를 어느 정도 이해했을 때에는 상대방에 너무 많은 상처를 주어 결국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어정쩡한 사랑을 일컷는 말이 아닐까 한다. 

 

대비적으로 보자면 두 여자와 두 남자, 즉 이름이 비슷한 두 여자, 마유코, 미야코를 보았을 때 마유코는 시즈오카의 한 치과에 근무하며 귀엽고 아양을 잘 떨지만 좀 속물적인 부분이 있다. 미야코는 도시적이고 지적이며 직선적이다.(부자집 태생이기 때문에 간접적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스즈키가 마유코와 사귀면서도 미야코에 끌린 이유는 미래를 보았을 때 그 편이 좀 더 나은 선택이라는 본능적인 계산에 의해서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두 스즈키는 (여기서는 뚱뚱한 스즈키를 스즈키A, 날씬한 스즈키를 스즈키 B라고 하겠다) 먼저 스즈키B는 샤프하고 잘생겼지만 다분히 폭력적인 성향이 있고 스즈키A는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말을 잘 들을 것 같다. 마유코는 스즈키B와 먼저 사귀었지만 동경에 파견을 간 이후로는 컨트롤이 잘 안된다고 느꼈을 것 같다. 그래서 못생겼지만 비교적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스즈키A에 작업을 걸어 양다리를 걸친 것 같다. 

 

양다리를 걸친 마유코와 스즈키, 둘 다 속물이라고 욕할 수는 있겠지만, 범의의 의미를 찾는다면 결국 결혼 상대로 자기에게 가장 맞는 짝을 찾기 위한 사회적 활동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마지막 장면에서 미야코의 본가 방문중에 마유코를 찾아 뛰쳐나온 스즈키나, 모쏠인척 하다가 전남친을 들켜버린 마유코나, 이후의 상황이 밝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제3의 누군가를 만나든, 아니면 Ex와 다시 관계를 이어나가든, 젊으니까 문제가 될 것은 없어보인다. 어차피 자신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가장 끌리는 누군가와 사랑은 계속 될 것이다. 

 

내용적으로는 어차피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니 별다를게 없으나(누구에게나 한 번은 있었을 법 한, 양다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걸 드라마틱한 반전으로 얽어 놓은 Side-A와 Side-B가 천재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탄탄한 캐릭터 구축이 볼 만 했다. 10년 전 영화이지만, 지금 보아도 재미있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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