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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초고령화 시대 노인 안락사 프로그램 '플랜 75'

by 천년백랑 202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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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개요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사가미하라 장애인 시설 흉기 난동 사건' 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해당 사건은 2016년 7월 26일 새벽 '우에마츠 사토시' 라는 청년이 지적장애인 시설 '츠쿠이야마백합원' 에 난입하여 잠을 자고 있던 장애인들을 무차별 살상하여 19명의 사망자와 29명의 부상자를 발생시킨 사건이며 사망자 수는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사건' 보다 많다고 한다. 

 

영화 초반부도 마치 위의 사건을 연상케 하는 장면으로 엽총을 들 젊은이가 노인 시설에 습격하여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한 후 자살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넘쳐나는 노인들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들이 받고 있다. 노인들도 더는 사회에 폐를 끼치기 싫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일본인은 옛날부터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을 긍지로 여기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 용기 있는 행동을 계기로 모두 진솔하게 논의하고 이 나라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물론 가상현실이지만, 가까운 미래, 노인 혐오 범죄가 전국에서 이어지는 한편, 심각해지는 고령화 문제에 대해 대처할 방안을 궁리하던 일본 정부는 75세 이상 고령자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지원하는 제도 '플랜 75'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 전례없는 이 시도는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며 일본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묘수가 될 것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건강검진 병원 한 구석에는 플랜 75의 홍보 코너도 한 구석에 구비되어 있다. 플랜 75에 가입하면 준비금 10만엔 (100만원 정도)를 준다. 그 돈으로 여행, 외식 등 쓰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장례비용에 보탤 수도 있다.  합동플랜을 선택한 경우에는 단체로 화장하거나 공원묘지에 함께 매장 될 수도 있다. 그 모든 비용은 무료다. 

 

 

주요 등장인물과 그 이야기 

미치 

 

무자식에 남편과도 사별한 78세 미치는 혼자 적적하게 살고 있다. 호텔에서 정리직원으로 일하며 같은 처지의 여성 노직원들과 왕래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일하던 도중 가장 친하게 지내던 이네코가 쓰러지면서 노인을 과로시킨다는 투서가 들어와 노인들은 호텔측으로부터 단체로 정리해고를 당한다. (그러나 투서는 핑계일 뿐, 노인이 호텔에서 일하다 죽으면 호텔의 이미지가 나빠져서 일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거주지는 곧 철거가 되어 새로운 집을 구해야 하지만 2년치 월세를 선불로 지급하거나 일자리가 있어야 해서 여의치가 않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고 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 퇴원한 이네코가 연락이 되지 않아 다음날 집에 찾아가 보니 식탁에 엎드려 죽어 있었다. 생활지원센터에 갔으나 이미 업무 종료가 되어 있다. 플랜 75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서 밥을 얻어 먹고 플랜 75에 가입하게 된다. 

 

물건을 정리하고 시설에 입소한다. 울렁거리지 않게 해주는 약을 먹고 안락사 장치에서 나오는 가스를 흡입한다. 그러나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음을 의아히 여기는데 직원은 기계 고장으로 가끔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고 기다리라고 한다. 미치는 무작정 도망쳐 나온다. 멀리 산 중턱에 걸린 석양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사과 나무 아래에서' 라는 노래를 부른다. 

 

사과 나무 아래에서 

사과 나무 아래에서 내일 다시 만나요
황혼 붉은 석양 서쪽에 가라앉을 무렵
즐겁게 뺨을 부비고 사랑을 속삭여요
진홍에 불타는 마음 사과 열매처럼

 

 


히로무


복지부 공무원이자 플랜 75의 업무를 맡고 있다. 노인의 접수를 받다가 우연히 플랜 75 프로그램에 신청하러 온 삼촌을 만나게 된다. (가족 사정으로 연락이 끊긴 삼촌과는 20년 만의 재회이다) 원래 3촌 이하의 친지 관계인 사람은 담당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어 담당자를 교체해야 하지만 히로무는 자신이 직접 담당한다. 

 

시설의 화장로가 고장나 대체시설을 확인하던 중 산업폐기물 처리 회사와도 계약이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다. 즉 화장로가 부족해지는 경우 산업폐기물 회사가 화장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삼촌이 시설에 입소하는 날, 히로무는 직접 삼촌을 픽업한다.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술도 한 잔 권한다. 그러나 삼촌은 이동중 오바이트를 하고 만다. 히로무는 삼촌에게 집에 돌아가자고 하지만 삼촌은 괜찮다고 한다. 

 

시설에 입소 후 삼촌은 안락사 가스를 마시고 죽게 된다. 히로무는 삼촌의 화장을 산업폐기물 회사에서 담당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마리아의 도움으로 삼촌의 시신을 몰래 빼돌려 자기 차에 태우고 다른 화장터를 알아보게 된다. 그러나 화장터 잡기가 여의치 않다. 마침 한 곳이 비어 있으나 시간이 빠듯하여 과속을 하게 되고 순찰차에 잡히게 된다. 경찰은 조수석의 삼촌이 시신임을 눈치 채지 못하고 히로무의 신원조사를 한다. 


요우코


플랜 75의 상담직원이며 미치의 전담이다. 상담 직원의 역할은 표면적으로는 플랜 75 신청자의 고충을 들어주고 노인들의 말동무가 되어 주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역할은 노인들의 마음이 약해져 프로그램에서 해지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피상담자와 직접 만나면 안되지만 미치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 만나고 싶다는 청을 들어준다. 함께 볼링도 하고 음료도 마시며 연민의 정이 생기게 된다. 미치가 입소를 하는 날 마음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 미치에게 전화를 하지만 이미 전화기 선을 뽑아 정리를 해버려서 미치와 통화를 하지 못하게 된다. 


마리아


일본에 온 필리핀 이주 노동자 이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해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 딸의 치료를 위해 돈을 벌러 일본에 와서 간병인 일을 하고 있다. 종교 집회에 참석했다가 보수를 많이 받는다며 플랜 75 일자리를 소개 받는다. 가보니 그곳은 플랜 75의 안락사 시설이었고 마리아는 입소한 노인들의 시신을 치우거나 죽은 노인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일을 담당하게 된다. 비록 궂은 일을 하고 있지만 마리아는 돈을 벌어 어리고 아픈 자기 딸을 건강하게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감상 

2025년, 일본 국민 5명 중 1명은 75세 이상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인의 도덕적 관념으로는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 라고 하는 중심 사상이 주도 하고 있다. 결국 돈 없이, 가족도 없이, 일도 없이, 몸뚱아리 하나만 남은 노인이 어쩌면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얹혀 살고 있다라고 하는 시선과 늙더라도 남은 여생을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라고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이해 충돌' 에 대해 심오하게 접근 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내용 자체는 30분짜리 단편영화 정도를 1시간 50분의 장편 영화로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고 전개가 느리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초고령화 사회에서 노인들의 자발적 안락사를 다룬 이야기는 그리 가볍지는 않다. 또한 대사를 통해서는 단편적인 정보만을 전달하고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를 통하여 두려움, 슬픔, 연민을 표현하고 있어 몰입도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뿐만아니라 한국도 빠른 속도로 저출산 및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국가 재정 문제나 일자리 문제, 젊은 세대의 부담 문제로 여러가지 사회 문제와 갈등을 야기 하고 있다. 당장 국민 연금 문제도 그렇다. 지금 상황에서는 얼마 안가 바닥날 연금액 문제로 지급 시기를 늦추거나 금액을 올리는 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보아야 하지만 여러 갈등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초고령화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어쩌면 영화에서처럼 암묵적으로 노인에게 죽음을 선택하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대한민국이라고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일본이 상대적 도덕의 국가라면 대한민국은 보편적 도덕의 국가라고 할 수 있겠다. 노인공경이나 장유유서 같은 유교의 사상을 받들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와 정보기술의 발달로, 지금은 빠르게 급변하며 개인주의화 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10년, 20년 후의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영화 중간에 미치가 아이들과 노는 장면(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다 서로 손인사를 하는 장면), 볼링장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장면이 있는데 아마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을거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 나라가, 아니 전 세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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