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라블라

97년 원양실습 일지

by 천년백랑 2022. 4. 19.
728x90

97년 실습선을 타고 난생 처음 외국(일본, 필리핀, 베트남, 홍콩)을 나갔을때 적었던 실습일지다. 일부 특정명칭은 블라인드 처리 하였다.  제대로 썼다면 더 재미있었겠지만, 배에서 생활이 녹녹치 않기 때문에 드문 드문한 내용으로 담겨져 있고, 실습 시작부터 호치민에 들어가기 전의 기대감까지 포함하고 있다. 

 

당시 나는 24세였고,  부족하고 어린 생각을 가진 예비역 대학생이었던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저런 일이 있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도 있고, 솔직히 쪽팔린 부분도 있다. 그래도 그나마 이 실습을 통하여 우물안 개구리였던 내 자신을 바라보고 깨우쳐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다. 이건 말그대로 실습일지이며 원양실습 당시의 내 생각이 담겨있다. 

 

오사카에서는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본의 모습을 보고 깨달은게 많았고 짬짬히 배운 일본어로 열심히 소통하면서 재미있는 시간들을 보냈다. 또 당시 정박했던 텐포잔 항의 공원에 놀러온 뮤지션 청년들과 음악적으로 소통하면서 같이 라면도 끓여 먹고 서로 연주도 보여주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홍콩에서는 오션파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영화속에서 보던 홍콩반도와 구룡섬의 관광지를 두루 다녔다. 

 

내가 깨달음을 얻은 곳은 바로 필리핀과 베트남이었다. 어릴때 우리집은 그리 풍족하지 못했고 내가 부족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현지인들의 팍팍한 (그러나 웃음을 잃지 않는) 서민적인 모습을 보고 투정만 했던 내 삶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그 때부터 일본어, 영어, 전공, 컴퓨터 등 닥치는대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터닝포인트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나 사건을 계기로 인생일 달라지는 시점을 가리키는데 나에게 있어서 터닝 포인트는 바로 이 원양실습이었다. 

 

그 후로 나는 컴퓨터에 대한 비전을 보고 컴퓨터 공학과로 편입을 했고 나름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나름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나름 좋은 삶을 살았다. (물론 직장 일이 다 순순히 풀린 것은 아니고 어려운 일들도 많이 있었다) 베트남에서의 좋았던 추억 때문에 베트남 여자와 결혼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 둘을 낳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처녀 항해를 시작하고 얼마 안되어 내가 탔던 실습선인데 2018년 퇴역을 위한 마지막 항해의 모습이다. 참 격새지감이고 감회가 새롭다.

 

 

1997.06.17

드디어 실습이 시작되었다. 내일부터 조업을 하고 월요일에 오사카에 들어간다. 동백호는 예상보다 시설도 좋고 편안하다. 지금은 바다 가운데서 정박 중이다. 주위에 많은 섬들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어디 근처인지는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이상하다. 오늘은 내가 겪어보지 못한 많은 것을 겪었다. 아침에 환전을 하고 내가 대열 제일 앞에 있는 것을 방송국에서 취재해가고, 계란/사탕 전쟁을 치렀으며, 너무 심심해서 만화책을 보았다. 난생 처음 해외로 간다는 것이 너무 흥분이 된다. 내가 오사카의 바다 위에 떠 있다는 상상은 마치 어느 꿈나라에라도 가는것처럼 여겨진다. 그들은 나와 다른 일들을 할 것이고, 전혀 다른 땅에서 산 사람들이고 내가 나온 방송을 봐야할텐데 그게 뉴스일지?

 

1997.06.19

어제는 조업하다 그물이 찢어져 오늘 낮까지 수리했다. 오늘 보망하고 또 조업을 두번이나 했는데 처음번은 거의 못잡았고 두번째는 꽤 잡았다. 삼치와 오징어 몇 마리를 회쳐서 먹었다. 저녁 무렵 노을이 비친 구름을 보았는데 회색빛의 수평선과 어우러져 장관이었다. 이곳 생활도 점점 익숙해져 간다. 지겹다는것만 빼고는 호화급이다. 방도 옮겨서 6인실을 두명만 쓴다. 멀미도 이젠 전혀 없다. (태풍이나 불면 또 몰라도) 

지금은 추자도로 향해 가고 있다. 내일은 새벽 4시부터 당직이다. 일찍 자던가, 자지말던가 해야겠다. 나도 꽤 게을러진 것 같다. 

 

1997.06.20

오전엔 추자도 서쪽 지점에서 조업을 했고, 오후엔 아마 소코트라 근처에서 했을것이다. 오전엔 게, 상어, 광어와 팔뚝만한 방어 한마리 등 푸짐했지만, 오후엔 겨우 1m 되는 장어 한마리가 고작이었다. 너무 잘 먹어서 배가 나오는 것 같다. 해외로 이적된 우리 선박은 어떤 항에도 들어갈 수 없다. 국내에서는 오사카에 들어갈때까지 우리는 바다위에 떠 있어야 한다. 사방엔 배도 한척 없고 그물에 모여드는 갈매기도 없다. 공부도 해야하고 연습도 해야하지만, 아직 손도 못대고 있다. 오로지 휴게실에서Video를 보는 것이 전부다. 어서 마음을 잡아야겠다. 

 

1997.06.22

내일이면 일본에 도착한다. 지금은 파도를 가르며 브릿지에 있다. 비가 오고 파도가 세서 좀 힘들지만 기분은 좋다. 저녁때는 어떤 반찬이 나올까? 

동백호는 시설도 좋고 새것이라서 아주 좋다. 그저께 제주도 근처에서 앵커링을 하고 어제 아침부터 지금까지도 줄기차게 달리고 있다. 역시 비행기에 비해 느리다. 오사카의 야경은 어떨까 궁금하다. 어서 내일이 왔으면

-------------------------------------------

지금은 새벽 2 15분이다. 술까지 한잔 먹어서 마음이 더 싱숭생숭하다. 여긴 분명 일본 영해지만 일본에 왔다는 느낌이 안든다. 안좋은 것은 비가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산을 가져올걸 오늘 돈을 세어봤는데 달러는 332달러, 엔은 3 1000엔 이다. 이번 Chance가 좋은 기회가 됬으면 좋겠다. 

 

1997.06.29

실습이 벌써 열흘이 지났다. 믿겨지지가 않는다. 지금 이곳은 나라 국제공항 근처인데 폭풍 때문에 그저께 출발해야 했던 것을, 여기 묶여 있다. 또 조기장이 손가락이 다쳐 패트롤선으로 실려가는 바람에 출발이 지연되고 있다. 일본의 일정은 다 끝난지 오래다. 생각해보면 아쉽기도 하지만 그나마 일본어가 조금 가능했기에 여러 사람과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놓는 것이 났겠다. 특별히 간 곳은 나라, 교토 등지의 유적지 (단체 관광), 오사카의 중심지인 우메다, 남바, 신사이바시, 니뽄바시 등지와 배가 정박되었던 텐포잔의 수족관 등지에 갔었고 아쉽게 오사카성은 못가봤다. (제일 중요한 곳이었는데) 또한 다마테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덕분에 소형 앰프도 얻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우리를 정성껏 대해주었다. 모모에도 정말 예뻤다. 일본어 공부도 많이 했고 정말 떠나기가 아쉬웠다. 다마테 기타 선생의 기타 연주도 들었고 그 밖의 여러 사람을 만났다. 다마테는 첫날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았다. 그날 그날 메모를 해 두었다면 좀 더 자세히 쓸 수 있을텐데, 이것 밖에 못쓰는 것이 아쉽다. 

 

1997.07.01

방금 샤워를 마쳤더니 무척 개운하다. 어제는 정말이지 지옥이었다. 밤새 찜통에 있는 기분이었다. 이번주 토요일이나 되야 필리핀에 들어갈 것 같다. 이젠 항해가 지겹다. 비행기로 한나절이면 갈 거리를 일주일이나 걸려서 가야 하다니

-------------------------------------------

저녁 먹기전에 머리를 깎았다. 왠지모를 슬픔이 밀려오지만 말 안듣는 머리카락 때문에 악몽까지 꾼걸 생각하면 속은 시원하다. 자꾸 배가 흔들려서 속이 매스껍고 머리가 아프다. 아까 당직서다가 안경의 코가 부러졌다. 정말이지 내 인생이 뒤죽박죽이 된 것 같다. 오늘부터 마인드 컨트롤을 좀 해야겠다. 

 

1997.07.03

좀 있으면 또 새벽당직을 올라가야 한다. 이제 필리핀 마닐라가 이틀 남았다. 하지만 일본에 갈때처럼의 설레임도 없고 기대감도 없다. 이 지긋지긋한 항해가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요즘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다. 잠을 자고 나면 날짜가 바뀌어야 하는데 세번을 자도 날짜가 안 바뀐다. 하루가 한달처럼 길게 느껴진다. 공부를 해도 집중이 되질 않는다. 이젠 멀미가 없어졌다 싶었는데 저녁을 먹고나니 머리가 아팠다. 일주일동안 바이킹을 탄 기분이다. 배가 흔들려서 도무지 집중이 안된다. 

-------------------------------------------

아직도 7/3일이다. 지금은 오후 8시인데 계속 배가 흔들린다. 요즘엔 밥량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특별히 입맛도 없지만, 변비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또 사랑니가 부어올라 매우 어색하다. 지금이 실습 사상 최악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수시간도 늘어나 제대로 씻지도 못한다. 어서 레포트를 써야겠다. 

 

1997.07.04

생각해보니 오늘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고 영화 인디펜던스데이로 따지면 세계의 독립기념일이다. 배식조라서 새벽 4시까지 당직서고 잠도 못자고 설거지를 했다. 재수 더럽게 없다. 그런데도 잠이 안온다. 내일이면 필리핀에 도착한다. 아니, 벌써 필리핀은 다 왔고, 내일이면 마닐라 항에 입항한다. 

필리핀에서는 어떤 일들이 기다릴까? 일본만큼 기대감은 없다. 후진국이라 그럴까?

샤워를 했더니 몸이 개운했지만, 사랑니 부근이 떠서 아침도 잘 못먹었다. 집에 가면 치과부터 가야겠다. 

 

1997.07.05

아침에 필리핀에 도착했다. 항구를 나오는데도 덥고 멀어서 꽤 고생을 했는데 계속 걸어다녔다. 지금 이곳은 마가티 시티의 한 술집이다. 이제 막 나가려고 계산을 준비하고 있다. 

-------------------------------------------

배에 돌아왔다. 마가티 시티에서 더 이상의 비젼이 없다. 택시를 타고 항구 근처의 번화가에 갔다. 한 삐끼를 만났는데 쇼를 보는 곳이 1인당 300패소라고 했다. 너무 비싸서 그냥 술만 먹으러 갔더니 20여명의 여자들이 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경험이라는 차원에서 우리 팀은 여자를 두명 불러 이런 저런 대화를 했다. 필리핀에는 한국의 영향력도 센 것 같다. 곳곳에 국산차들이 달리고 있고 한국어로 된 간판도 많다. 다른 팀이 간 술집에서는 한국말이 유창했다고 한다. 부두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려 마치 옷을 입고 수영을 한 것처럼 젖었다. 번개도 무섭게 치고 완전 폭우였다. 길을 몰라 한참을 헤맸다. 마가티의 술집에서는 한국인도 만났다. 이곳 필리핀은 정말 극과 극이 공존하는 나라다. 그들이 우리를 보고 웃는 이유도 모르겠다. 난 현지의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영어도 안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목표가 오로지 기생관광이다. 그렇다고 이 삭막한 곳에서 혼자 다닐 수도 없고 한국인 말로는 마닐라보다는 다른 섬들이 좋다고 하는데 마닐라 외에는 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다음에 또 오고싶지도 않다. 이곳으로 유학 온 사람들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이제 피곤해서 자야겠다. 좋은 내일이 있기를

 

1997.07.06

단체관광이 시작됐다. 지금 팍상한으로 간다.

-------------------------------------------

돌아오는 길에 여러곳을 둘러보고 이곳은 기념품 판매소이다. 팍상한은 계곡에서 보트를 타고 폭포에 가서 폭포에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으로 끝난다.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돈을 뿌리고 다니는지 한국사람에게는 팁과 물건 매매를 강요한다. 물건도 그렇게 싸지는 않다. 한국에만 바가지 요금이 있는 줄 알았더니 여기에는 폭탄 바가지가 판을 친다. 폭포는 그런데로 볼만했다. 계곡은 절경이었다. 부페에서 밥을 먹고 오는 길에 마가티 시티를 돌고 빈민가와 부유층만 사는 곳 : 육군사령부 등을 돌아보고 돌아왔다. 기차 노선을 두르는 끝없는 빈민가는 차마 눈뜨고 볼 수조차 없다. 사람이 산다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지만 실상은 우글우글하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자식은 열댓명씩 둔다고 한다. 소수의 천국과 다수의 지옥이 공존한다. 

 

1997.07.08

원래로 하면 7/9일이지만, 아직 잠을 안자서 7/8일로 쓴다. 지금은 새벽. 바빠서 또 기록을 못했다. 7/6일은 단체관광을 마치고 시간을 빌어 쇼를 보러갔다. 갈때 배에 놀러온 필리피노의 지프를 얻어타고 (라면을 주고) 8명이서 콩나물시루처럼 들어갔다. 내릴때 전부 다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쇼는 전체적으로 단조로웠지만 재미있었다. 처음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서양의 무수한 피가 섞여 인종시장처럼 보이는 무대위에는 미녀들이 즐비했고, 번호표가 붙은 옷을 벗어던지고 점점 알몸이 되어갈때마다, 또 공중에서 뛰어내려 다리를 찢을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밤이 깊었지만 좌석은 꽉꽉 들어차 있었다. 여자를 부르려면 메니져에게 연락해야 한다고 한다. 이상하게 별로 흥분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올때는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어제는 피곤해서 푹 자고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남아 있던 때거지의 사람들과 모여서 리잘파크에 갔다. 사진도 찍고 음식도 먹었다. 종업원이 한국인임을 눈치채고 나무젓가락을 갖다 주었다. 할로할로는 정말 맛있었다. 지나가다가 여자 3명에게 말을 걸었는데 좀 부유한 직업여성들 같았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였다. 나와 **이형, **이형 셋이 맡아서 같이 다니고 나머지는 떨어져 나갔다. 내 파트너는 멀시라는 여자였는데 집은 다른 섬이지만, 친척인 다른 여자 둘을 만나러 마닐라에 왔다고 한다. 영어를 잘 못해서 애를 먹었다. 사진을 찍다가 근처에서 차를 먹고 한참을 걸어가다가 여자가 안내한 곳이 아직 오픈이 되지 않아 다시 걸어서 술집으로 갔다. 그녀들은 술을 먹지 않았는데 필리핀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자들은 술을 안먹는다고 한다. 그곳은 1층은 생음악, 2층은 노래방 같은 곳이었다. 두명이 전화를 걸러 갔다오더니 길이 막혀 가야한다고 했다. 마침 매우 답답하던 차에 그녀들을 보냈다. 우리 일행은 택시를 타고 가라오케가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고 기사는 VIP들만 간다고 하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무슨 호텔 주변의 환락가였다. 망설이다가 한 살롱에 들어갔다. 가격은 1시간 반에 1인당 600패소이고 맥주 1명에 48패소였다. 내 파트너는 20세의 조시라는 여자였고 한마디로 영 아니었다. 그녀는 키가 무척 작았고 곱슬머리에 얼굴은 술집여자 치고는 못생긴 편이었다. 거기서도 말이 안통해서 애를 먹었다. 단지 알고 있는 단어들을 조합해서 겨우 쉬운 의사 전달만을 했다. 다음날 필리핀을 떠나지만 난 3일 후에 간다고 했고 그녀는 내일도 오라고 했다. 갈때도 나 혼자만 12까지 있으라고 했다. 내가 그녀의 외모들을 칭찬해주자, 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시간도 됐고 돈도 그리 충분하지 않아서 그냥 나왔다. 난 시간내내 그녀의 곁에 있었는데 나중에는 가기가 싫어졌을 정도였다. 일본인들이 노래를 부르자 가게 내의 모든 여자들이 나가 즉석 뮤지컬을 꾸민 것도 기분이 나빴다. 배에 돌아오자 중간에 떨어져 나간 우리 팀들이 공원에서 술을 먹다가 소대병력의 경찰에게 붙들려 겨우 플려났다는 사실을 들었다. 다음날이 독립기념일이라서 그런지 경계도 삼엄한 것 같았다. 오늘은 아침내내 2인 당직도 서고 지금 잠이 안와 이글을 쓰고 있다. 아침 9시에 출항했고 지금 호치민을 향해 가고 있다. 필리핀은 정말 재미있고 이상하고 기분상하고 아쉬운 곳이었다. 꼭 한번 다시 오고 싶다. 

 

날짜미정

내일이면 호치민에 도착한다. 4일동안 험난한 파도와 싸웠다. 원래 일정은 오늘 도착인데 속도를 줄여서 아직도 메콩강 어귀에도 못미친다. 지금은 파도가 많이 잠잠해졌다. 배안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다. 나흘은 악몽의 나날이었다. 나오는 날은 번개의 축제였고, 다음날부터 환상의 바이킹

베트남은 어떤 나라일까?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더더군다나 사회주의 국가다. 이번에는 라면을 많이 가져가서 물물교환을 할 계획이다. 미녀는 많이 있을까? 난 지금 **선배의 레포트를 대신 해주고 있다. 9불과 책 한권 받았지만 내가 밑지는 것 같다. 너무 힘들다. 이젠 잠에 지쳐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고향이 그립기도 하다. 어제는 혼자서 군대 노래를 불렀다. 멀미를 잊기 위해 이제 그만 써야겠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