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는 히데의 광팬이었다

백랑칼럼/문화평론 | 2012.05.31 23:49 | Posted by 21c 글로벌 선진 리더 천년백랑

지금부터 풀고자 하는 썰은 사실 누가 공인해 줄 수 있는 그런 내용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감과 깜냥에 의존하는 글임을 미리 밝혀 둔다. 서태지의 태지라는 이름이 X-japan의 타이지에서 나온게 아니냐는 설에 대해 맞다, 아니다, 의견이 분분하다. 필자는 타이지에서 가져왔다는 것에 100% 확신할 수 있다. 일단 만약 서태지가 한국식으로 생각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면 SEO TAE JI 라고 지었을게다. 거의 대부분의 '태'라는 단어의 영문은 'TAE'라고 쓴다. 태권도도 영문으로는 'TAE KWON DO' 라고 쓴다. 그런데 서태지는 굳이 'TAI JI' 라고 사용하였다. 사실 까놓고 구글닷컴에다 대고 'Taiji'라고 검색해 보면 가장 많이 검색되는게 서태지, 타이지, 태극권이다. 결국 태지나 타이지나 원류가 같다는 뜻이다. 그럼 왜 서태지는 타이지의 이름을 차용했을까?

 

서태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시나위라는 국내 최고의 ROCK 밴드에 베이시스트로 몸담았다. 그때가 80년대인데, 사실 80년대 90년대 한국에서 Rock을 했다고 하는 사람중에 X-japan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일본 대중문화가 금기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암암리에 자료를 구해야 했다. 그나마 X-japan이 미국 진출을 꿈꾸며 미국 공연이나 영어음반출시 같은 시도를 했기 때문에 국내에 알려질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X-japan의 등장은 정말 환상이었다. 휘황찬란한 헤어스따~일과 의상, 메이크업, 쇼맨쉽 충만한 무대메너, Endless Rain의 구슬픈 선율 등, 자타공인 비쥬얼락의 최고봉은 많은 국내 Rock Boy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Rock을 잘 모르는 필자의 한 여자친구도 X-japan 아냐고 물었더니 "아~~ 그 분수머리???" 하더라.

 

 

 

 

시나위도 그랬을 것이다. 분명 X-japan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은 Rock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Rock을 전파하는 전도사로써 동서양의 모든 Rock 음악을 섭렵해야했을 것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어쩐지 위의 X-japan의 모습과 흡사한 듯도 하다. 비록 스타를 흉내내는 고등학생 같아 보이기는 해도 말이다.

 

 

 

 

서태지는 그중 같은 베이시스트였던 타이지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관심이 훗날 서태지라는 이름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아래는 타이지와 서태지의 베이스기타 연주 모습이다. 스타일이 비슷해 보인다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인가?

 

 

 

 

 

 

아래는 타이지가 라우드니스로 이적하고 히스를 영입한 후의 사진이다. 화려했던 비쥬얼은 어느정도 빠진 시점이다.

 

 

 

 

그러고보니 더욱 시나위와 비슷해 보이는 것 같다. 왼쪽 (이름을 몰라 죄송 ^^;;) 은 파타와, 오른쪽 김종서는 요시키와, 가운데 위의 서태지는 토시와, 요즘 탑밴드로 주가를 올리는 아래 신대철은 히스와 이미지가 너무 흡사하다.  

 

 

 

 

아래 썬글라스 쓴 김종서는 위 사진의 토시와 씽크로율 120%다. 정말 필자가 처음 발견했을때도 깜놀이었다.

 

 

 

 

자 그럼 Rock Boy였던 서태지와 시나위의 사진을 좀 더 감상해 보도록 하자.

 

 

 

 

 

 

 

 

 

 

 

 

 

 

 

그러나 그가 서태지와 아이들이 되고부터는 오히려 히데의 팬이 된다.  일단 스타일면에서 아래 사진을 보면 어느정도 교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음악적으로 본다면 히데는 실험 정신이 투철했다. Good Bye, Hurry Go Round 같은 어쿠스틱적인 음악도 했었고, 50%/50%, Tell Me, Misery 같은 대중음악같은 Rock 스타일도 했었고, Dice, Bacteria 같은 인더스트리얼 락 스타일도 원산지인 미국과 비교해 뒤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함을 보여줬었다. 심지어는 테크노적인 시도도 했었다.

 

서태지도 여러 실험적인 음악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 힙합전사로 변신했기 때문에 힙합음악을 했지만, 난알아요나 하여가같은 곡은 Rock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갱스터랩도 시도를 했었고, 필승서부터는 다시 Rock으로 귀환하여 발랄한 펑크나 힙합적 요소가 가미된 핌프락, 그리고 자신만의 멜로디와 코드를 살린 감성락으로 발전을 꾀했다.

 

그러나 사실 히데는 서태지를 잘 몰랐을 것으로 사료된다. 히데에 관한 자료를 아무리 뒤져봐도 생전에 서태지에 대해 언급한 대목은 없다. 그러나 히데가 죽고 난 후 서태지의 행보에 대해서는 확실히 히데에 대한 연민이 묻어난다. 자신이 개최한 Rock 페스티벌인 ETP Fest 에 히데가 키우고 함께 했던 밴드 Hide with Spread Beaver를 히데의 이름으로 라인업에 추가시킨다. 과거 히데의 영상과 노래에 Spread Beaver의 연주를 덧씌우면서 마치 히데가 환생한 듯한 퍼포먼스를 벌였었다. 그리고 그 공연에 히데의 부모를 초청한다. 그리고 아래 사진과 같이 히데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하트 페인팅 기타를 기증받는다.

 

 

 

 

 

 

그러나 서태지도 공식 석상에서 히데를 언급한 적은 없다. 한국적 정서에 비추어 일본 문화에 대한 거리감이나 한국 대표 뮤지션으로써 쉽게 일본 뮤지션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를 표명하지는 못했을것이다. 하지만 히데의 천재적 예술성은 많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귀감이 되었다. 필자에게 까지도... 그리고 2000년대에 들어 요시키는 서태지의 음악성을 알아보고 러브콜을 보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히데의 죽음에 대해 좀 코멘트를 달고자 한다. 일본 가쉽사이트를 뒤지다가 히데의 죽음에 대한 황당한 주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히데의 죽음에 자살이다, 과로사이다 라는 의견은 분분했지만, 결국 과로사인것으로 기울어진 상태이다. 술에 만취된 히데가 문고리에 수건을 동그랗게 말아 목을 지탱하고 있다가 호흡곤란으로  의식을 잃어 죽었다는 것 까지는 의심할 여지 없는 팩트다. 사실 자살을 하려고 했다면 천장에 목을 매지 문고리에 목을 맸을까라는 당연한 생각에서 역시 과로사나 사고사 쪽으로 기울어 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황당한 주장이라는 것은 히데의 동거인이 마지막으로 히데를 발견했을때 문고리에 목을 매고 앉은 상태에서 트렁크가 무릎까지 내려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 목을 조르는 가학적인 상상을 하며 문고리에 건 수건에 목을 매달고 마스터베이션을 하다가 숙취와 피로에 의해 산소결핍이 올때까지 목이 조여지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게 그 황당한 주장의 전모이다. 황당한 이야기고 진실성이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만, 어쨋든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사고사든, 과로사든, 자살은 아니라는거... 

 

그는 음악과 자신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사람이고 높은 꿈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은 절대 자살을 하지 않는다. 하여간에 하늘에서나마 그가 못이룬 꿈들을 이루어 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내 자신을 바라본다. 대학시절, 스쿨밴드에 몸담아 집과 학교와 공부는 뒷전인채 오로지 음악만을 생각했던 시절... 동네 영상음악실에서 X-japan 노래를 신청하고, 라우드니스와 메탈리카를 카피하며 서태지 테입을 들었던 시절... 음악의 삶과 평범한 삶의 기로에서 난 결국 평범한 삶을 택하고야 말았다. 자신감이 없었기도 하고, 내 자신을 믿지 못했기도 했다. 돈이라는 핑계를 전면에 내새우고 좀 안정적이고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에 가고 있는지 미궁에 빠진 느낌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중심에 서서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픈 꿈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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